‘히든 피겨스’는 수치와 편견 사이, 냉정한 시스템 속에서도 따뜻한 희망을 품었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다. 계산이 무기가 되고, 침묵이 외침이 되었던 시대에, 캐서린·도로시·메리는 단단한 신념과 조용한 용기로 벽을 허물고 미래를 그려냈다.

1. 천재 흑인 여성들 이야기
우리는 종종 역사의 중심에 선 사람들만을 기억하지만, 그 중심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 이들의 이야기는 더 오래 남는다. 히든 피겨스는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세 명의 흑인 여성 수학자가 나사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놀랍고도 감동적이지만,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성취를 넘어선, 한 시대를 견디고 바꿔낸 용기의 서사로 다가온다. 캐서린은 수식으로 인정을 받기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차별과 고립을 감내했고, 도로시는 스스로 기계 언어를 익혀야만 하는 현실 앞에서 아무도 내어주지 않는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으며, 메리는 공학자가 되기 위해 법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증명해야 했다. 나는 이 영화가 단지 여성의 성공담이나 흑인의 인권 신장을 말하려는 것 이상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편견의 벽을 뚫고 나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간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들의 조용한 위대함을 보여주는 기록이었고, 그 기록이 주는 울림은 지금 우리의 일상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거창한 혁명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가 매일 싸우고 있는 불합리와 불공평 역시 이렇게 작고 단단한 발걸음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벅차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끝에서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를 때, 나는 그것이 단지 과학의 성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에, 이 영화는 단지 감동을 주는 것을 넘어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건 ‘숨겨진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그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도달했다는, 감히 ‘본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스마트한 흑인 여성들의 이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서 직접 감상하길 추천한다.
2. 숫자에 숨겨진 용기
NASA의 회색 복도 끝, 캐서린 존슨은 늘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가 다루던 것은 숫자였지만, 그녀가 마주한 것은 차별과 고립, 그리고 견고한 벽들이었다. 백인 남성들로 가득한 회의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핵심 정보는 늘 그녀의 손끝에서 멀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먼 거리를 돌아 화장실을 찾아야 했던 현실, 그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존재 자체를 외면당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 모든 순간에도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복잡한 방정식 앞에서 흔들림 없이, 오차의 끝을 조용히 좇아갔다. 분노보다는 침착함으로, 불합리함보다는 수식으로 맞섰고, 마침내 그 손끝은 우주를 향한 길을 정확히 그려냈다. 시간이 흘러, 존 글렌의 우주 비행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모든 이가 당황한 건 예상 밖의 오류 때문이었다. 자동 컴퓨터가 내놓은 궤도 계산은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그 순간 존 글렌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캐서린이 다시 계산해주길 원한다." 그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인 신뢰와 실력의 증명이자, 모든 편견을 넘어선 진심 어린 인정이었다. 그녀는 다시 공식을 써내려갔고, 어떤 중압감도, 어떤 시선도, 그녀의 손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녀를 지탱했다. 사실 그녀는 완벽하지 않았다. 궤도 계산은 단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고, 수십 번의 반복과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은 실수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계산이 다르면, 조용히 원인을 찾아냈고, 다시 펜을 들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였고, 좌절은 단단함으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누구보다 꾸준하게 계산했고, 그 반복된 인내가 결국 인류 최초의 지구 궤도 비행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캐서린은 말없이 증명했다. 틀리지 않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틀려도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진짜 용기 있는 존재라는 것을.
3. 회색 건물 속 작은 반란
NASA의 복도는 늘 조용했고, 공기는 차가웠다. 그 안에서 캐서린 존슨은 하루에도 몇 번씩 800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려 흑인 전용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상사는 그녀가 자리를 자주 비운다고 나무랐지만, 정작 그녀가 비워야 했던 것은 자리가 아니라 존엄이었다. 결국, 캐서린은 침묵을 깨고 말한다. “저는 커피 포트도, 화장실도, 책상도, 심지어 제 자리도 제 것이 아닙니다.” 그 목소리는 회색빛 건물의 한복판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작고 떨리는 외침이었지만, 그날의 울림은 그 어떤 계산보다 뚜렷했다. 도로시 본은 흐름을 먼저 읽은 사람이었다. IBM 컴퓨터가 들이닥치고, 미래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챘다. 아무도 그녀에게 묻지 않았고,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백인 전용 구역에 발을 들이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을 빌려 나오는 모습은 말 없는 항의였고 캐서린이 가장 캐서린답게 행동한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된다. 도로시는 결국 IBM을 작동시킨 유일한 존재가 되었고,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도 변화를 나누어주었다.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벽을 넘었다. 메리 잭슨은 문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수업은 백인 전용 학교에서만 들을 수 있었고, 그녀는 법정으로 향했다. 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판사님, 당신이 매일 역사를 만드신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그 말 한 줄은 벽에 난 틈이 되었고, 결국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도의 장벽, 보이지 않는 규칙의 두께는 상상 이상이었지만, 메리는 단단한 말 한마디로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캐서린의 현실을 알게 된 알 해리슨은 묻지 않았다. 대신 망치를 들었다. 백인 전용 화장실 표지판을 내리치며 말했다. “NASA에는 단 하나의 색만 있다. 그것은 바로 엔지니어다.” 그 짧은 말과 행동은 시스템의 균열을 만들었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도, 하나의 옳은 선택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혁명은, 회색 건물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캐서린과 해리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그 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침묵을 깨고, 문을 두드리며, 오래된 표지판을 부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