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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뮤지컬 비교와 인물들의 서사, 거사 전야

by obzen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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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위대한 이름 뒤에 숨은 인간 안중근의 고뇌와 결단, 시대를 견디는 동지들의 침묵과 연대, 그리고 극적인 총성이 울리기까지의 고요한 호흡을 따라가며, 무대의 상징과 영화의 현실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심을 전하는 순간을 깊고 서늘하게 담아낸다.. 누군가는 기도로, 누군가는 눈빛으로, 말없이 선택한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시대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1. 뮤지컬과 영화, 서로 다른 두 개의 무게

뮤지컬 무대 위에서 봤던 ‘영웅’은 말 그대로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당장 내 앞에서 숨을 쉬고 있는 누군가처럼 느껴졌다. 그가 쏟아내는 노래 하나하나엔 살기 위한 절박함이, 무대 위 작은 움직임 속엔 시대를 거스른 청춘의 뜨거움이 배어 있었다. 관객석에서 마주한 그 울림은 거창한 조명도, 웅장한 편곡도 필요 없었다. 배우의 눈빛, 떨리는 목소리, 빠른 발검음, 무대 위 땀 한 줄기까지 모두가 그 시대의 증언처럼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스크린에 옮겨졌을 땐, 전혀 다른 감정의 무게로 다가왔다. 영화 ‘영웅’은 프레임이라는 정밀한 창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더 가까이,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뮤지컬이 단숨에 감정을 폭발시켰다면, 영화는 조용히 눈을 맞추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 단장의 순간에도 배우의 숨결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해낸 카메라의 시선은, 그저 슬픔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그 슬픔을 마주하게 만든 이유를 되묻게 만든다. 그래서 똑같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이지만, 무대 위에서와 스크린 속에서 그가 품고 있는 정의의 결은 조금 다르게 떨린다. 뮤지컬이 ‘함성’이었다면, 영화는 ‘속삭임’에 가까웠다고 말하고 싶다. 무대에선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채운 에너지가 감동을 밀어붙였다면, 영화에선 오히려 절제된 호흡과 고요한 시간들이 더 묵직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뮤지컬에서 그의 외침을 통해 시대를 느꼈고, 영화에서는 그가 혼자 남은 침묵 속에서 인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같은 이야기지만, 매체가 달라지면 감정의 결도 바뀌고, 관객의 앉는 자리도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영웅’을 비교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 두 세계가 각자 품고 있는 고유한 무게를 존중하고 싶다. 이 다름이 다양한 안중근을 더 충분히 해준다. 하나는 무대 위의 진심으로, 하나는 화면 속의 숨결로, 그렇게 우리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파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2.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들의 서사

이야기는 한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안중근’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교과서 속 한 줄의 문장이 아니다. 영화는 그를 고정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신앙과 고뇌, 침묵과 결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끝내 ‘행동’을 선택한 인간 안중근을 따라간다. 정성화가 연기한 그는 카톨릭 신자로서 살생에 대한 내적 갈등을 품고 있으면서도, 조국의 독립이라는 이름 앞에 총을 들기로 한다. 작전의 준비부터 재판장에서의 마지막 진술까지, 그의 이야기는 단단하게 흐르되 감정은 선명하게 울린다. 뮤지컬 넘버 속 그의 노래는 그저 대사의 연장이 아니라, 그가 가진 신념의 맥박이자 관객에게 닿는 메시지다. 그와 함께 서 있는 인물, 설희(김고은 분)는 영화가 창조한 이름이지만, 오히려 더욱 깊은 울림을 안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를 눈앞에서 경험한 뒤 일제에 삶을 빼앗긴 그녀는,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감추고 밀정으로 살아간다. 설희는 겉으로는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고위 관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만, 그 속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와 책임감이 조용히 끓고 있다. 그녀는 안중근의 동지이자 조력자로서 작전의 결정적 고리를 제공하고, 동시에 독립운동 서사에서 여성 인물이 어떻게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조도선(조재윤 분)은 말보다 행동으로 말하는 인물이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그가 상징하는 것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작전 실행의 핵심을 맡고, 때로는 동지들보다 먼저 위험을 감수한다. 대사보다는 눈빛과 움직임으로 신념을 말하고, 누구보다 조용히 중심을 잡는다. 조도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서사는 종잇장처럼 흔들렸을 것이다. 유동하(배정남 분)는 또 다른 방식의 그림자다. 밀정으로서 정보 전달과 외곽 지원을 맡은 그는 외형상 무심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진짜 용기는 어쩌면 그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위험을 말하지 않고 감내하는 태도는 결코 소극적이지 않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보여주는 기지와 결단력은 오히려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주며, 영화의 서사에 숨은 밀도를 더해준다.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이토 히로부미(니시다 토시유키 분). 악역의 상징이지만, 영화는 그를 평면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냉철하고 계산적인 정치가로 묘사된다. 단순한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안중근의 이상주의와 정면으로 맞서는 현실주의의 얼굴이다. 암살 직전,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는 장면은 단 한 마디의 대사 없이도 이 영화의 주제를 응축해낸다. 힘과 권력, 신념과 선택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찰나. 이토는 적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한 조각으로 존재한다.

3. 거사 전야, 그 숨 막히는 순간들

하얼빈행 열차가 다가오는 어느 겨울의 끝자락, 안중근과 동지들은 그 누구도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작전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움직임 하나, 고개 돌리는 각도 하나까지도 마치 오랜 연극을 준비하듯 조율되고, 누군가는 정면을 응시한 채 말없이 손을 꽉 쥐고 있다. 준비된 것 같지만 완전할 수 없는 계획, 그러나 그 틈을 용기라는 이름으로 메우는 사람들. 서로의 눈빛 속에서 ‘그래,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말 없는 확신이 흐르고, 그 침묵은 곧 결의로 바뀐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계산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계획에 없던 감시의 눈초리가 더 날카로워지고, 주변의 작은 낌새 하나에도 마음은 한 걸음 더 조여온다. 설희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감추며 더 단단히 숨고, 안중근은 그런 그녀의 흔들림마저 자신의 책임처럼 껴안는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이들의 불안은 더 인간적으로 스며들고, 그 불안 속에서도 발걸음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해진 길을 향해 나아간다. 결행을 앞둔 밤, 그들은 내일이라는 말을 누구도 쉽게 꺼내지 않는다. 말보다 눈빛이 많고, 웃음보다 기도가 길다. 어떤 이는 담배 한 개비를 더 오래 붙잡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닫힌 창문을 오래 바라본다. 이별은 분명 준비된 것이 아닌데도,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끝을 받아들이고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작별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이 장면이 아무런 강조 없이 오히려 담백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결국 아침은 온다. 하얼빈역, 그 낯선 장소로 한 명씩 자리를 향해 스며들 듯 모인다. 열차의 도착은 곧 약속된 시간의 시작이었고, 그 짧은 몇 분은 마치 모든 시간이 응축된 것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사람들의 발소리, 시계의 초침, 눈발 사이를 스치는 공기의 결까지도 마치 총성을 향해 다가가는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진다. 총소리가 울리기 전, 이미 우리는 그 장면의 무게를 느낀다. 소리보다도 깊은 정적, 움직임보다도 더 날카로운 멈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전하는 결행의 진짜 얼굴이다. 극적인 동작보다 절제된 고요로, 소리보다 침묵으로, ‘하얼빈’은 그렇게 가장 강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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