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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스토리 전개와 감정 변화 분석 및 바둑의 세계

by obzen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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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바둑판 위에서 스승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가 침묵 속에 쌓아온 시간과 감정을 한 수 한 수에 담아내며, 승패를 넘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을 그린다. 바둑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가장 조용한 대화였다.

1. 등장인물 및 전개

1980년대, 바둑판 위에 신이 있었다. 조훈현, 그의 수는 계산이 아니었고 본능이었으며, 사람들은 그가 돌을 내려놓는 순간마다 침묵했고 감탄했다. 바둑은 그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가장 조용한 전장이었다. 그의 곁에 있던 소년, 이창호는 그렇게 세상에 내던져졌다. 말수는 적었고 눈빛은 깊었으며, 그는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나갔다. 조훈현은 그에게 수를 가르치며 동시에 삶의 냉정함도 가르치려 했고, 이창호는 그 모든 것을 가슴에 새기며 더디지만 정확하게 스스로를 빚어냈다. 두 사람은 함께 수없이 많은 대국을 지났고, 때로는 같은 편으로, 때로는 멀리서 서로를 지켜보며 쌓아온 시간 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생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모든 시선은 스승이 아닌 제자를 향했고, 사람들은 조용히 세대의 교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훈현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쌓아올린 세계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공식 대국. 조훈현과 이창호, 두 사람은 바둑판 앞에 마주 앉는다. 돌을 놓는 손끝은 담담했지만,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감정은 말보다 더 진했고, 흑과 백은 수보다 기억에 가까웠다. 조훈현은 자신이 일러준 수를 제자가 거슬러올 때마다 마음 한편이 흔들렸고, 이창호는 그가 넘어서야 할 존재 앞에서 단 한 수도 가볍게 둘 수 없었다. 그날의 승부는 단지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서로를 닮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스승은 제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마지막 돌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세상은 환호했지만,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누군가는 사라졌고, 누군가는 떠올랐지만, 그들은 같은 시간의 물결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우고, 견디고, 나아갔다. 바둑은 그들에게 승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었으며, 마지막 한 수는 언어보다 깊은 존경이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고, 다음 시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2. 주인공 ‘이창호’의 감정 변화 분석

이창호는 어릴 적부터 조훈현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제자였다. 그에게 스승은 단지 가르치는 이를 넘어 바둑이라는 세계 자체였고, 넘을 수 없는 벽이자 닮고 싶은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침묵으로, 감정 대신 수로 모든 것을 배워나갔고, 자신만의 욕망마저 억누르며 스승의 그림자 안에서 자라났다. 매 판마다 그의 수는 마치 조훈현의 연장선 같았고, 그 연장선 위에서 그는 자신을 지우고 완성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의 수가 깊어지고 이름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그를 조훈현과 같은 선상에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엔 조용한 균열이 일었다. 존경과 경쟁 사이, 넘어서야 한다는 마음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였고, 그는 그 복잡한 감정을 아무 말 없이 수로만 표현해갔다. 내면의 충돌은 늘 조용했지만, 깊었다. 마침내 대국에서 마주 앉은 순간, 이창호는 그 바둑판이 단지 승패를 가르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 묵은 감정과 시간의 밀도가 스며든 장이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놓는 수마다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 담겼고, 스승의 한 수마다 전해지는 무게를 느끼며 그는 점점,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단순한 이김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승부의 끝에 남은 것은 환호도, 기록도 아니었다. 오직 두 사람 사이에 흘러온 시간, 말로 다하지 못했던 감정, 한 수 한 수에 녹아 있던 진심. 바둑은 서로를 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었고, 그날의 승리는 누가 더 뛰어난가의 증명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끝까지 받아들인 끝에서 얻어진 조용한 인정이었다. 이창호는 스승을 넘어섰지만, 동시에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감정은 경쟁이 아닌 연대와 감사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만의 길 위에 선 한 사람의 기사가 되었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모든 수를 품고도, 더 이상 그 그림자에 머무르지 않는, 자신만의 색으로 싸우는 바둑의 사람으로.

3. 흑과 백 사이, 바둑이 품은 세계의 질서와 철학

바둑판 위에 놓인 흑과 백의 돌은 마치 세상의 이치처럼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영화 ‘승부’를 보며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았던 건 그 돌들이 움직이는 리듬이 단순한 승부를 넘어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흑과 백은 언제나 대립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의식하며 공존하는 관계에 가깝다. 어떤 돌이든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그 주변의 흐름 속에서 생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바둑이라는 세계가 인간관계나 사회의 구조와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수를 두는 데는 침묵과 고뇌가 필요하고, 좋은 수란 곧 ‘이기는 수’가 아니라 ‘살아남는 수’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미생에서 반집승을 하다보면 자기 자리를 지켜준 돌들 하나하나가 고맙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런 좋은 수들이 바둑 한판을 결정짓는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이 바둑판 앞에 앉아 있을 때, 그들은 단순히 상대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두려움, 욕망, 고집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은 어느 누구도 완전히 이기거나 지지 않은 채, 그저 다음 수를 남기는 일처럼 보였다. 나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승부’의 정의가 꼭 상대를 꺾는 데 있지 않다고 믿는다. 진정한 승부는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두는지를 끝까지 잊지 않고 버텨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바둑은 전략이 아닌 철학이고, 돌을 놓는 행위는 계산이 아닌 직관이자 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그 복잡한 세계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에, 왜 돌을 둘 것이냐고. 어떤 수는 너무 이르고, 어떤 수는 너무 늦지만, 결국 그 모든 선택들이 모여 하나의 길을 만든다는 걸, 나는 바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흑과 백 사이에 명확한 정답은 없다. 그 사이에 있는 건 단지 수많은 실수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수를 이어가려는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 ‘승부’는 그 마음의 무게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단순한 바둑 영화가 아닌, 인간의 본성과 관계,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바둑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위에 놓인 돌 하나하나가 삶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바둑을 좋아하는 초6 아들의 권유로 함께 영화관에 가서 본것인데 바둑1단인 아들의 눈은 반짝 빛나고 대사가 가슴에 남아 영화가 끝난 후 줄줄 외우며 영화에 관한 감상평을 연신 말했었다. 이기는 법을 하나 더 알아냈다는게 핵심이었다. 아들을 보면 바둑은 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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