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능력보다 진심으로 딸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건 어떤 설명도 아닌, 조건 없이 오래도록 남는 사랑 그 자체였다.
1. 샘과 루시, 사랑을 증명해야 했던 세상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깊은 사랑은 어쩌면 샘과 루시의 관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아이 엠 샘'을 보고 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마음 한쪽에 오래 머무는데, 그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한다는 게 꼭 어떤 능력을 증명해야 가능한 일인지, 문득 묻게 되기 때문이다. 샘은 지적 능력이 일곱 살 아이 수준이지만, 루시에게만큼은 세상의 누구보다 따뜻하고 안전한 아버지다. 그가 딸에게 주는 사랑은 계산이나 조건이 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내려는 진심뿐인데, 세상은 그 진심을 증명하라며 샘을 법정으로 밀어넣는다. 나는 그 장면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 사회가 사랑에조차 기준을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부모 자격을 판단하는 일에 숫자와 논리가 사용된다는 게, 샘의 말없는 눈빛을 볼수록 더욱 서글펐다. 루시는 때로 아빠보다 더 어른스럽게 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샘을 사랑하고 믿는 아이였고, 그 둘이 손을 잡고 웃는 장면은 늘 어딘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샘의 성장도 보여주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이 샘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이 더 인상 깊었다. 차가운 변호사였던 리타가 점차 그 안의 공허함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이 가진 것들이 다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변화, 나는 그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좋았다. 아이의 순수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샘을 보며, 나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스러운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은 설명이나 말로 다 해낼 수 없는 것들, 행동과 눈빛, 기다림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묵묵히 이어지는 태도 같은 것이다. 영화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지만, 그 조용한 울림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샘이 마지막에 아이를 위해 선택하는 장면에서는, 사랑이란 결국 나를 버려서라도 너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이 영화는 장애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능력이라는 말로 잘라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샘의 말투, 걸음걸이, 노래 부르듯 대사를 읊는 모습 모두가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따뜻한 리듬 속에서 내 마음 어딘가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건, 이 영화가 내게 오래도록 남은 이유다.
2. “사랑”이라는 말이 꼭 똑똑할 필요는 없다는 것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정말 있을까, 나는 샘을 보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문장을 끝까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숫자에는 서툴고, 일상에서 엉뚱한 실수를 반복하지만, 루시를 향한 사랑만큼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단단하고 선명하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믿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것들로 정의되고 구분되어 있어서, 오히려 본질에서 멀어지는 건 아닐까. 샘은 사랑을 거창한 말이나 화려한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매일 루시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작은 습관을 기억해주며, 그녀가 힘들어할 땐 조용히 옆자리를 지킨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루시가 아빠보다 똑똑해지는 게 두렵다고 울던 장면이었는데, 그건 아이가 자라며 마주한 슬픔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지능’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심하고 차가운 기준일 수 있는지를 실감했고,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할 자격마저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는데, 샘을 보며 확신이 생겼다. 그것은 똑똑해서 가능한 것도, 정확해서 증명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사랑은 어쩌면 틀려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고, 말을 잘하지 못해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명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감정이다. 샘은 그 어떤 이론도 없이, 아주 순수하게, 망설임 없는 마음으로 루시를 향해 다가서고, 그 진심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너뜨릴 만큼 뭉클하다. 나는 그런 사랑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드라마처럼 짜여진 대사도 없고, 감정을 과장하는 장치도 없는데, 그저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루시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그 사랑을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아본 게 아닐까. 세상이 그에게 '부족하다'는 이름표를 붙이는 동안, 그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히려 가장 순수한 사랑은 똑똑해지기 이전의 마음에 숨어 있다고.
3. 감동의 여운과 영화적 메시지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조용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가도 말끝을 흐리게 되는 그 감정, 설명하려고 할수록 자꾸 더 멀어지는 여운, 아마 그것이 '아이 엠 샘'이 남긴 가장 진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보게 됐고,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형태는 아마 샘이 루시에게 건네는 그 반복되는 하루들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잘 포장된 말도 없고, 세련된 감정 표현도 없지만, 샘의 사랑은 망설임이 없었고, 조건이 없었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매일을 견디고 지켜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나의 방식이 맞는지, 상대가 그것을 알아주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사랑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샘은 그런 판단의 영역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순수했다. 사랑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 마음은 더 깊게 전해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몇 번이고 눈물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건, 결국 샘이 루시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았는가에 대한 조용한 진실이었다. 법정도, 사회도, 세상의 기준도 결국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금씩 물러나고, 샘과 루시가 함께 웃는 그 마지막 장면은 너무도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에서 가장 큰 울림을 느꼈다. 사랑은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오래 남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떤 결론이나 메시지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조용한 사랑이,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이들의 마음에 잔잔하게 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작고 조용하게도 표현될 수 있는지 배웠고, 그게 오히려 더 진실하다는 걸 느꼈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건 줄거리도, 갈등도, 결말도 아니었다. 그냥, 사랑. 그것만이 끝까지 남았다.